본문 바로가기
마음담론

최근 겪은 마음 상처, 누가 만들었나?

by 오뚝이 루크 2020. 7. 26.
반응형

  오늘 문득 친구 A와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가치관과 주관이 뚜렷하고,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친구. 10년도 넘게 지내온 좋아하는 친구. 

  하지만 오늘 문득 이 친구는 나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친한 친구들과 한 그룹에 속해있는, 지인보다는 가깝지만 친구보다는 먼 존재 정도로. 과거의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그 생각들을 합리화하기 시작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정리를 하며 머리를 비워내려고 애써 보다 다시 책을 펼쳤다.

  내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부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마음이 상할 때면 스스로 "나는 지금 몇 살로 느끼고 있지?"하고 물어본다고요. 그러면 곧장 마음속의 아픈 곳. 마음상함을 일으킨 배경이 되었던 불안의 뿌리에 가 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따귀 맞은 영혼 중 129P-

  문득 한참을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 기억났다. 

  당시 친구 B는 본인보다 친구들이 무언가를 잘하면 견제를 하곤 했다. 본인이 반의 중심이 되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다른 친구들이 본인보다 공부나 운동 등을 잘해서 관심을 받으면, 그걸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욕구 충족이 되지 않자 B는 이간질, 뒷담화, 거짓말 등의 방법으로 친구들의 관계를 자기를 중심으로 재편성하고자 했지만 반 친구들 모두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B에게서 등을 돌렸다. 나도 처음에는 그 친구와 멀어지고자 했다. B가 선생님들의 관심을 많이 받던 나를 유난히 깎아내리고 배척하려 했기 때문에 굳이 내가 편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동생과 B의 동생이 같은 반 친한 친구였는데, 동생을 통해서 B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질투가 나서 그랬는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반에서 그 친구와 다시 살갑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때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써오면 답을 해주고, 친구들과 빨리 전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주로 썼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물었다. 

  "너 B랑 다시 친하게 지내?"

  친하게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친구들 모르게 교류를 하고 있던 나는 당황했다.  알고 보니 B가 내가 본인과 반 친구들 모르게 뒤에서 친하게 지내며 호박씨를 까고 있다는 식으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친구들의 비난의 화살을 내게 돌리고 자신이 무리에 다시 섞여 들고자 했다. 거기에 내가 친구들 욕을 했다고 내용을 부풀렸다. 그렇게 나를 고립시키면 본인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B의 거짓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그 아이의 계획은 실패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망가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내 앞에서 웃더라도 그게 결코 내게 호의가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어렸던 내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때 이후로 친구관계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하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과 속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치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친구의 행동이 조금 달라진 거 같으면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말실수를 했나? 나한테 뭐가 서운한가? 등등. 알고 보면 집에 무슨 일이 있다던지 다른 친구들은 못 느끼는데 나 혼자 예민했다던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고 나서 A와 내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찬찬히 상기해보았다. 오히려 A에게 참 많은 걸 받았고 배웠다는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지금 A가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다고 해도 우리의 관계는 다시 좋아질 정도의 신뢰가 서로에게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결국 나는 혼자 상처를 만들어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치유가 가능하도록 과거의 내 상처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 경험으로써 축적했다. 그리고 이것이 게슈탈트 심리 치료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부분의 내용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서 친구 A를 소환해가며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쳤나 보다. 그나저나 20년도 넘게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하게 되다니. <따귀 맞은 영혼>을 읽으며 여러 번 놀란다. 오늘의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