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12월을 만나던 날까지만 해도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책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이직을 하고 자차로 출퇴근을 하고 회사 적응하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보다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아 졌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던 때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가. 새삼 그때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1월에 만났던 책은 그나마 설 명절이 있어서 읽어냈지만, 2월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 걱정만 앞섰다.
나는 책을 접할 때 누구에게 추천을 받았건, 우연히 알게 되었건 그 책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을 먼저 찾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상에 쉽게 동조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직장인들을 위한 심리서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단편소설집이었다. 제목과 표지를 보며,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책장을 넘겼다. 총 8개의 단편소설 속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물론,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소설 속의 주된 내용은 아니더라도. 어떠한 장면으로든.
야근을 하고 오더라도 책을 펼 수 있었던 건, 책장을 넘기기 쉬웠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내가 느낌 감정이었고,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한 편, 한 편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잘 살겠습니다>를 읽을 땐, 결혼 준비를 하면서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고,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인간관계, 업무 스트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하는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결말로 갈수록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피식 웃음이 났다. <다소 낮음>을 읽으면서는 꿈을 위하여 현실과 타협하지 않던 장우를 응원하는 마음과 등짝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면서도, 현실에 타협하게 되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도움의 손길>에서는 서로 간에 익숙해지면 허물어지기 쉬운 예의나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고, <백 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을 읽으며 최근 이직하면서 다시 수없이 제출했던 나의 이력서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첫 출근이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처럼 설레기만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장거리, 그것도 자차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도입부부터 나를 당황하게 했던 건 <새벽의 방문자들>이었다. 첫 문장만 보고는 왜 갑자기 19금이? 라며 당황했지만, 말하고 싶은 바는 따로 있는 에피소드였다.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가질 수 있는 불안감에 대해 다룬 에피소드였는데, 실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혼자 사는 여자들이 사는 집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주는 불안과 공포에 대해 생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탐페레 공항> 편이 마지막에 배치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핀란드 할아버지 '얀'의 배려는 6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그녀. 소중한 사람, 보답하고 싶은 사람에게 표현하기를 미뤄두는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감동적인 에피소드였고, 그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소중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이 단편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들을 간단하게 남기고 싶어 적다 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다. 내 주변에 있을 법한, 대한민국의 치열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만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책을 읽는 게 어려운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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