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반응이 참 뜨거운 책이었다.
뜨거운 반응을 보고 나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손에 쥐고 읽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책을 읽기 전에는 왜들 이렇게 책이 좋다고 추천하는지 의아했다. 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 이미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린 것들에 어떤 특별함이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컴퓨터 밖 현실 세계가 클라우드 서버 위로 옮겨간다.
우리의 자아, 사회적 관계, 정치 담론과 같은 실재 대상들 역시 가상화되어 서버 위로 옮겨지고 있다. - 18P-
인스타그램과 페이스 북은 우리의 두 번째 삶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들은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지만, 내 삶을 공유하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실재가 가상 세계로 옮겨간다거나 가상현실이 현실을 초월했다는 표현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저자의 주장이 우리 주변에 만연한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다.
처음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는 '소통'과 '기록'이 목적이었다. 내가 갔던 좋은 곳, 내가 산 좋은 것을 사진을 올리고 정보를 공유한다. 내 일상에 대한 감상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적었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긴다. 처음에는 관심 없었던 '좋아요' 숫자가 은근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 사진을 찍어도 좀 더 예쁜 구도로 찍고, 카페를 가도 더 예쁜 카페로 가고, 음료를 주문해도 새롭고 사진 찍기에 예쁜 것으로 주문해서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다. 해시태그도 처음에는 서너 개만 달았지만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난다. 더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기 위해서.. 가상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면의 뉴스도 페이스북으로 확인한다. 몇 번 관련 피드를 확인했더니 더 자주, 특정 관점을 지닌 글들이 계속 추천 피드에 떠 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정리 분야에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보았더니, 추천 영상에 비슷한 키워드의 영상들이 계속 업데이트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정리를 잘못하고 이제 좀 관심을 가지려는 '오프라인의 내'가 정리에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가상현실의 나'로 바뀌어 있었다.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도 매우 달라졌다. 이전에는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관계를 형성했다. 온라인에서 만나더라도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야지만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 만나 온라인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생각을 교류한다. 온라인에서도 소통을 통해서 충분히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의 만남은 오로지 선택사항이다. 오히려 물리적/시간적인 이유 때문에 온라인 교류가 더 선호되기도 한다.
이 모두가 가상의 삶이 현실의 삶을 끌어당긴 사례들 중에서 내가 겪고 있는 현상들이다.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 안에서 나의 정보가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 각종 기업들에 의해 수집되고 수치화되어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료로 쓰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변화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판단을 대신하고, 도시와 정보를 대신 운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 발전의 이면을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과 정부 기관들의 관계이다.
선진 기술을 가진 기업의 주된 고객이 정부기관이나 국가가 될 경우, 기업이 가지고 있는 나의 '금전 거래/주차장 사용 기록/병원 기록 등의 다양한 정보들과 정부기관이 가지고 있는 범죄 이력/인간관계/운전면허 정보 등이 결합하게 된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완성할 수 없었던 '나'란 존재가 두 기관의 결합으로 360도 확인 가능한 '나'라는 존재를 완성하고야 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둘의 결합 과정에서 개인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각 개인들에게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심지어 어떠한 안내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 그런 사례들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기술 발전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배웠다.
<가상은 현실이다>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상의 삶의 우리의 현실을 흡수하고 있고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음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책이다. 앞으로의 변화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갈 것인가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양한 기술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의 사례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책이라는 점,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
을 생각해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내일의 독서모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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