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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는 삶

눈 앞에 있던 유물을 이제서야...

by 오뚝이 루크 202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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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살 수능이 끝났던 11월, 그동안 내게 금지되었던 것이라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친구 손잡고 부평 지하상가에 나가서 귀를 뚫는 것이었다. 아빠가 엄했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대학교 가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으며 살았다. 그리고 귀를 뚫는 것으로 내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

  12년 간 해보고 싶은 거 못해보고 살았던 억눌림이 귀를 뚫는 순간 해방된 듯했다. 처음에는 작은 귀걸이를 가진 것만으로 행복했는데, 점점 화려한 디자인의 귀걸이를 사게 되었다. 학교 가는 길에 송내역에 흘린 듯이 멈춰서 귀걸이를 뒤적였다. 친구랑 서울 나들이를 가면 항상 액세서리 가게의 귀걸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봐야 학생이라 내가 귀걸이 1개를 사는데 나름 정해둔 상한선은 4천 원. 그래서 내 귀걸이는 천 원에서 4천 원을 넘지 않는다.

 

  귀걸이를 좋아하다 보니 선물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귀걸이를 사거나 4천 원 이내의 귀걸이를 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귀걸이들은 내 화장대 한편을 차지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7년을 함께 해온 귀걸이들. 변색되고 먼지가 쌓였다. 화장대를 정리하기로 결심한 김에 이 아이들도 이제 보내주기로 했다.

 

   나름 지금 해도 괜찮을 거 같은 애들도 있어서 마음을 비우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짝이 없는 아이들 변색돼서 하기 어려운 것들, 디자인이 도저히 안되겠는 것들을 먼저 일부 골라냈다. 사실 너무 화려한 것들도 다 정리해야 했다. 예전에는 많이 꾸미고 다녀서 화려한 귀걸이도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무렇게도 입은 옷에도 어울리는 아이들이 필요해서 과감해질 필요가 있었다.

 

  정리의 시작은 비움이지만,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미련이 많이 남지 않는 것들 위주로 골라보았다. 그리고 경험해본 바로는 한번 내다 버리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도 집 밖으로 배출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워밍업인 셈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비슷한 디자인의 아이들이 참 많이도 있었다. 특히 나비 디자인은 어찌나 많은지..

  위에 있는 것들은 버리고 일부 쓸만한 것들은 서랍 안에 귀걸이 자리를 마련해서 넣어주기로 했다. 일단 넣으면 다시 정리할 마음을 갖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쓸만한 것들은 가장 마지막에 골라보기로 했다. 이 날은 너무 힘들어서 서랍 속의 다른 것들을 뒤져보기보단 바깥에 귀걸이 정리가 쉬워 보여서 먼저 그 구역을 정리했던 듯하다.

  한 때 아끼던 물건들을 정리하니 역시 아쉬움은 남지만, 계속 새로운 것들을 들여내느라 좁아진 화장대를 불편하게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화장대가 공간이 부족한 건 화장대가 작아서가 아니라, 충분한 크기의 화장대를 내가 물건들에 휘둘리기 때문에, 물건들에게 주인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제는 내가 공간의 주인으로 서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물건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주인으로 우뚝 설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기는 계속 이렇게 기록으로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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