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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나다

여행을 다시 생각한 책 -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 김민식

by 오뚝이 루크 201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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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과 습관, 이 두 단어가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습관이라는 건 일상에서 내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굳어진 나의 행동 양식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여행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존재하는, 하나의 이벤트와도 같은 것인데 여행에서 습관이 만들어졌다니.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 책일지 궁금해져서 선택하게 되었다.

 

1. 나의 여행 

 

  여행.

  언제나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여행을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20대의 내가 했던 여행과 30대의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은 참 많이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여행 경비를 적게 들이고자 하는 점은 같지만, 현지에서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특히 달라졌다. 20대의 나는 조식이 나오는 숙소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딱 1끼만 쌀을 먹고 라면으로 때울지언정 최대한 많이 돌아다녔다. 다니는 것도 택시나 렌트는 꿈도 꾸지 않았다. 온종일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 1일권을 이용했다. 30대의 나는 일단 여행 범위가 넓어졌다. 가끔이긴 하지만 가까운 해외를 가고, 돈이 조금 들어도 조식이 맛있는 숙소를 찾는다. KTX를 타고 렌트를 한다. 현지에 가면 유명하고 맛있는 집은 다소 비싸고 줄이 길더라도 기다려서 기어코 맛보고 만다. 이왕 온 김에 뭐든지 다 먹고 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여행을 하는 동안 20대의 고생스럽지만 즐거웠던 기억은 머릿속 어딘가에 치워두었다.

 

  여행을 떠나는 계기도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힘들고 지쳤을 때 훌쩍 떠날 수 있었다.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상관없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어디든 가는 여행을 했다. 여행지에서 극적인 체험을 하지 않아도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현실 속에서 어느 정도 다시 버틸 힘을 충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지금의 나는 돈과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처럼 시간을 냈으니 경비를 최소한으로 들이지만 그래도 좀 갔다 왔다고 말할만한 곳을 먼저 생각했다. 그곳에 가서는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것, 체험할 수 있는 온갖 것을 최대한 하고자 했다. 그게 모처럼 시간을 낸 내가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핑계는 그랬다. 언제 또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즐거웠던 기억과 사진이 남았다. 하지만 여행에서 겪었던 일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니, 소중한 경험을 하고도 서서히 내게서 잊혀 갔다. 교훈을 얻거나 배우는 것이 있어도 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새로웠다는 '느낌'만 아련하게 남았다.

 

2. 김민식 PD의 여행

  내가 책 속에서 마주한 김민식 PD의 여행은 한마디로 '도전'과 '깨달음'이었다. 1992년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자전거로 2주간 국내여행을 하고,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그를 보니 그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일단 그는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행동력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여행지에 가서 스스럼없이 현지인, 관광객 할 것 없이 친구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은 이래서 좋아요. 인생에 새로운 즐거움을 추가하는 기회거든요.  (본문 90P)
  
  여행에서 중요한 건 소유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사물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소비하는 삶이죠.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111P>

    이 두 문장만 읽어도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지에서 제일 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 돈으로 차라리 경험을 사는 여행. 그래서 내가 본 그의 여행의 한 면은 도전이다.

 

  김민식의 여행에는 항상 깨달음과 배움이 있다.

  문득 치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을 견디다 기회가 오면 벼락같이 치고 나가는 인생. 그러자면 기다리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고 기다리는 게 진짜 실력이에요. 몸을 가볍게 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그런 치타가 되고 싶어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124P>

  그가 세렝게티 사파리를 갔을 때 치타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위와 같이 생각해 글로 옮겼다. 내가 만약 그 장면을 봤다면? 아마 '대박!'을 외치며 광활한 자연의 섭리에 고개를 숙이는 정도로 감상을 끝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여행에서 보고 생각한 것을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까지 확장해서 생각하고, 경험을 인생관으로 승화했다. 이 부분이 나의 여행과 작가의 여행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었고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여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면, 글을 쓰는 동안 그 추억을 회상하면서 즐겁고,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하는 나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고, 기억을 되살리면서 또 즐겁다. 여행기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 부분을 작가는 김명철 박사의 <여행의 심리학>을 재인용하면서 강조했다.

  여행은 이야기다!...(중량) 이야기를 썩히면 죄가 된다. 우리 자신의 경험에 충실하지 못한 죄,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망각의 강으로 떠내려 보낸 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극진한 경험을 부추기지 못한 죄 말이다.

  사실 여행기만큼 글쓰기에 좋은 소재가 없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가장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 책장을 펼칠 때만 해도 '스몰스텝'과 비슷한 성향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은 습관을 삶에 녹여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두 책 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로 결정된다.'라는 문장을 담고 있는 공통점이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스몰 스텝'이 습관 형성을 통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개인 브랜딩에 관한 책이라면,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책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작가는 여행지에서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어떤 건이 인생인가에 대해 계속해서 배워왔고 배워왔다. 또 배워갈 것이다. 그렇게 쌓인 배움은 그의 인생관이 되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정표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인생관이라고 할만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앞으로의 여행에서 새로운 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 길에 이르는 방법을 아직은 모르지만 조금씩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한 가지씩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만의 여행을 시작해 보려 한다.

 

  "생로병사가 모두 모여 인생인데, 앞의 좋은 것만 취하고 뒤엣것은 버린다는 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 않을까?"
  여행도 그렇습니다. 좋은 날씨, 좋은 경치만 쏙 빼먹고 내뺄 순 없어요. 여행에서 고난이 닥치면 깨달음이 오고 배움이 생깁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달립니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오는 대로 받아들이려고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2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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