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결혼한 지 4년이 넘었다. 4년. 숫자로는 길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내가 결혼생활을 해나갈 시간에 비하면 길지 않은 시간이다.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4년이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남들 다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때론 아프기도 했다.
살면서 상처받거나 싸울 일이 없으면 참 좋겠지만, 사실 마냥 꽁냥꽁냥 하게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충돌의 횟수를 줄이고, 설령 충돌할 일이 생기더라도, 최대한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그런 지혜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내 결혼 생활이 불행하거나 우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남편과 더욱 건강한 관계를 맺고,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이 책을 읽게 했다.
읽으면서 나를 뜨끔하게 하는 내용도 있었고, 앞으로 아이가 생긴다면 이런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래! 내 말이 이 말이라고!' 외칠 만큼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내용들도 많았다. 심리상담가이기 때문에 분석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인생의 선배가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자녀를 만나야할까?>
인간에게 있어서 첫 경험이 중요한 것은 그 경험들이 모두 고스란히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탕이 되어 대상들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형성되므로 인생 초기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은 한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자원이 된다.
-15P-
'처음 겪는 일'이 사람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일일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단편적인 시점이 아니라 인생의 초반이라는 기간 동안에 하는 경험들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 또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의 초반기에 가정 내에서 자신감과 신뢰가 특히 잘 형성할 수 있도록 자녀를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자신감과 그에 기반한 신뢰가 그다음 이차적인 대상들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다만, 너무 뜨겁게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자녀의 삶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도록 충고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신의 욕구를 자녀에게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것을 발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뜨거운 사랑은 타죽고 너무 차가운 사랑은 얼어 죽는다.'라는 표현에 무릎을 탁 치게 되면서도 그 선이 어디까지일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버렸다.
<부부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저자가 언급했던 내용 중에 인상에 남았던 것은 부부 관계에서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융합이란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므로 상대방을 있는 자체로 존중하기보다는 내가 통제하고, 나에게 맞추려고 한다. 그러면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분화하여 함께 협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권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었다.
부부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하나의 인격이 아니다. 각각의 인격체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고하고 행동한다. 둘을 하나라는 단어로 묶어서 그 안에 가두고 통제하려고 하니 갈등이 생긴다. 인생의 '동반자'라는 표현으로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동반자라고 하면 좀 더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존중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다 보면 통제하려고 하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면서도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향한 목표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 삶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으로 각자의 목표를 향한 걸음이 부부의 갈등과 긴장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93P-
이 부분은 우리 부부가 잘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한 마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관심 분야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서로 응원해주고 활동을 지지해준다. 그렇다고 대단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소소한 탈출구들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이다. 또한 많은 대화 소재가 되고 이를 통해 좀 더 서로를 이해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나를 만나야 할까?>
살아가면서 매번 다른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비슷한 일로 갈등을 겪는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그런 편이다. 신랑과 언쟁을 할 때,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대부분 신랑의 잘못으로 결론이 난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고, 단순히 신랑이 내게 언변에서 밀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항상 그렇게 결론이 나기에 나는 우리 부부가 싸움을 하게 되면 대부분 신랑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내가 반응을 달리했다면? "오빠 때문이야!", "오빠가 내 말 안 들은 거니까 알아서 해." 하는 대신에, "괜찮아.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되지.", "내 말을 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 이렇게 하면 어때?" 하며 이해와 위트로 넘겼다면, 불필요한 언쟁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왜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 왜 화부터 냈을까?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감정을 다스리는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부끄럽고 어렵지만 자기 안의 '괴물'과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의식 없는 무모(無謀)함은 대상 탓을 하게 되지만 깨닫는 성장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삶의 패턴을 바꾸려는 노력을 시도한다.
-81P-
결국 건강한 자아를 갖기 위해 자신을 마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을 저자는 자기 분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자기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아래의 문장에서 잘 담아내고 있다.
알면 알아가는 만큼 인생길은 쉬워지지만 모르면 모르는 만큼 험한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자기 분석이 위대한 것은 한 인간을 칭하는 것만은 아닌 성장에 이르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모르면 반복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변화로 바뀐 삶을 살아간다. 우리 인생을 바로 이끌어주는 고마운 초자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순종해 나갈 때 우리들의 삐딱한 인생은 바로 세워지기 시작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아서 책을 읽으면서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말은 이럴 때 필요한 표현인 듯하다. 다만, 심리학에 대한 단어가 언급될 때 간혹 설명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문맥에 따라서 이해하면 책을 읽어나가는데 크게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심리학 분야의 도서들이 내게 필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내가 자녀가 생긴다면 어떻게 키워야 할까의 고민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 신랑의 두 손에 살포시 쥐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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