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루거 총을 든 할머니>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시작부터 총성이 울렸다.
베르트가 만들어낸 총성은 로이와 기메트라는 연인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곧 경찰들이 도착했고, 그녀는 경찰들에게 저항하지만 그녀가 벤투라 반장과 경찰서에서 마주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사를 받는 입장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녀는 거침없고 당당했지만 말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벤투라 반장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집 지하실을 수색할 것을 지시한다.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7구의 시체와 많은 동물들의 사체. 벤투라는 그녀의 자백을 받기 위해 베르트와 계속 밀당을 하고, 비로소 7구의 사체와 얽힌 그녀의 과거의 문이 열린다. 그 이야기들이 소설의 주된 내용들이다.
베르트의 과거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몰입도가 높다는 것이다. 베르트의 과거 이야기기가 몰아치듯이 전개되고 난 뒤,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벤투라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독자도 호흡을 고를 수 있는 구조이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자리를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물론 시간은 4~5시간 걸렸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고 메시지가 분명했다. 현재 시점에서 베르트와 벤투라의 밀당이 잔잔한 재미를 준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싸워온 지 어언 한 세기가 넘었고, 살면서 죄책감을 심어주는 말이라면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다. 내가 이 의자에 죽치고 앉은 뒤로 네놈들이 입만 벌렸다 하면 주구장창 떠드는 말들처럼."
- 70P-
"날 지켜야 했으니까. 난 혼자였어, 그리고 여자였다. 그게 내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될 순 없을지언정, 설명은 돼. "
-329P-
주인공 베르트의 치열했던 삶을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살기 위해 루거 총을 들었고, 전사로 살아왔다. 베르트가 총을 들었던 대상들은 지금은 살아가는 우리들도 맞서야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자신을 강간하려고 하는 군인으로도 모자라 가정폭력을 일삼는 첫 번째 남편. 약자를 위협하는 존재,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존재 등과 싸워낸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진 또 다른 강점은 그 베르트의 싸움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뤄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베르트는 사는 내내 사회의 불합리한 대우와 가치관, 편견과 싸워냈다. 때로는 자신을 위해서, 때로는 타인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베르트가 맞서온,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합리한 것들에 여전히 저항하고, 그것과 싸우고 있는 또 다른 베르트들이 있다. 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평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 듯하다. 물론 그런 요소들도 있지만, 나는 '인간 존중'이라는 이 네 글자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동안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서 책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소설에는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약자들도 등장하고 있음을!
사실 이 책을 제대로 해부해보려면,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장면과 장면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그것을 위해 책의 내용을 스포 해버리면 내가 책에서 느낀 속도감과 재미 등을 느낄 기회를 앗아가게 될 것 같아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서평을 쓰는데 많은 한계가 생긴 점은 다소 어려웠다. 다만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재미와 깨달음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올해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 뭐야?' 또는 '읽으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책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주저함 없이 '루거총을 든 할머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기 계발 도서나 넘쳐나는 다른 교양도서들에 지친 분들에게 잠시 베르트와 쉬어가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2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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