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냄비는 처음 결혼할 때 샀던 냄비다. 결혼을 2015년 6월에 했으니, 벌써 5년을 바라보는 냄비가 되시겠다. 냄비 내부의 까지고 긁힌 흔적들이 그 세월을 고스란히 비춰내는 듯하다. 내 요리의 성장통을 함께 겪은 김주부 역사의 증거.
약 2년 전에 이사하느라 가전을 구입하면서 받은 냄비들은 고이 모셔두고 저렇게 만신창이인 아이를 계속해서 사용해왔다. 작년 12월에 정리수납 전문가 2급 과정을 수강하면서 도자기나 식기류, 냄비 등에 코팅이 벗겨지게 되면, 가열하거나 뜨거운 내용물을 넣었을 때 유해한 성분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냄비를 바꿔야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조금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사용해왔지만, 오늘 저녁 준비를 하며 문득 이제는 정리를 더 늦추지 말자고 생각하고 깨끗이 씻어내서 버리기로 했다.
비록 냄비 하나지만 내 결혼생활의 설렘을 안고 있는 물건이라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저 냄비에 신랑이 말도 안 되는 요리를 하고, 그걸 수습하고, 새로운 요리를 해보는 재미를 알아갔다. 많은 추억이 있지만, 이제 사용할수록 우리에게 해가 될 물건이니 이제는 보내주어야 한다.
냄비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수명이 다해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철이 지나거나 맞지 않는 옷, 몇 년째 쌓아두고 읽지 않아 지금 시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책, 선물을 받았지만 쓰지 않아 유효기간이 경과한 화장품. 이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공간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막아선다.
떠나보낼 것은 떠나보내자. 떠나보낸 자리는 우리의 공간으로 만들고, 꼭 필요하지만 자리잡지 못하던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된다. 물건을 보낸다고 추억까지 떠나가는 건 아니다. 그 물건과 함께 했던 추억들은 사진이나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으로 얼마든지 상기할 수 있다.
주변의 것이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내게 속한 것을 이끄는 삶. 그게 내가 진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은 아닐까? 기억하자. 집착이 깊은 자는 매력이 없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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