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관계 속에서, 일의 과정에서, 선택의 길 위에서. 이 모든 장소에 나는 항상 후회와 나란히 서 있다. 일을 잘한 순간에는 '다른 방법으로 했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아쉬워하고, 실수를 했을 때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후회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마음에 강한 데미지가 남는다.
머릿 속에서 후회스러운 장면들이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떠오를 때마다 후회를 반복하고 또 괴로워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지?', '정말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수백 번 반복되어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괴로워하고는 같은 실수, 행동을 반복하고 또 후회한다. 악마의 쳇바퀴가 돈다.
며칠전에도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후회할 일이 생겼다. 처음 하는 후회가 아니었다. 내가 하는 후회는 유형이 다양하지 않다. 항상 비슷한 일로 머리를 뜯고, 한숨을 뱉는다. 이번의 후회는 유난히 길었고, 괴로움이 더욱 생생했다. 그래도 이번 후회가 다른 때와 달랐던 점은 '나는 왜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를 생각했으면 내가 그런 행동을 했던 원인을 제거하면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왜'는 성찰을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후회용 탄식이었다. 내가 정말로 나를 성찰하고, 반성하고, 같은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고자 했다면, 내가 후회하는 상황에 놓인 원인을 돌이켜봐야 했다.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이유가 있다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외쳤던 '왜 그랬을까?'는 자아성찰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 놓지 못했다. 그저 후회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why' 가 없으니 'how'도 없었다. 왜 그랬는지 원인을 찾았으면, 그 원인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왜 우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을 어떻게 행동해야 해결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이라면 허기를 채워주고, 장난감이 필요해서 우는 것이라면 장난감을 쥐어주어야 한다. 그동안의 나는 아이가 우는 상황을 난감해하기만 했을 뿐, 왜 우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 좀 더 명확해졌다.
1단계 :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며 성찰해본다.
2단계 : 내가 문제의 상황에 놓인 원인이 무엇인지 몇번이고 질문한다.
3단계 : 어떻게 그 문제의 핵심을 제거할 것인지 방법을 강구한다.
글로 풀어놓고나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데, 왜 과거의 나는 하지 못했을까? 왜 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삶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좋은 것만 보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진대... 가시덤불 안의 나의 꽃씨는 아무리 물과 양분을 주어도 가시덤불보다 더 높이, 풍성하게 자라날 수 없다. 가시덤불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만 쑥쑥 자라난다.
아마 내가 후회라는 가시덤불 안에 머물러 있었기에 내 안의 성장의 동력들이 자라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에게 고백하니 조금은 홀가분하다. 그 동안의 마음을 짐을 내려놓고 힘차게 달려 나가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나에게 고백해야겠다. 나의 부족함을. 그러니 무엇을 내게 해주어야 할지 함께 생각해달라고 청해봐야겠다. 이건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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